“공부하려고 입학했으면 책을 읽어야지. 책 안 읽는 새끼덜아!” 느닷없는 호통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수백명이 듣는 강당 수업에는 학내 모든 전공자들이 그의 수업을 듣는 듯했다. 신학과 수업인데 전교생 수업이었고, 광야의 외침이었다. 그랬니? 니깟덜이 그걸 알간? 반말로 강의하는 그가 이상하게도 고맙기까지 했다. 살벌한 전두환 독재시대에, 그는 노자의 모순된 ‘X(채움)=~X(빔)’이라는 인지구조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과 현대 중 든든학자금 생활비대출 기등록 국의 정치에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어용 교수가 장관이 되던 시대에, 운동권 학생들도 선생님 수업을 진지하게 수강했다. 신학과 수업서 수학 공식 이용해 동서양 대가들의 사상 쉽게 강의 은퇴 뒤 훈민정음 음성학 연구로2016년 용재 백낙준 학술상 받아 “기깟 썩은 생각은 버리라.” 그가 분필을 칠판에 던져 박살 낼 때, 우리는 대가리에서 딱딱한 이분법이 호두 개인회생 진술서 샘플 처럼 깨지는 혁명을 체험했다. ‘금강경’으로 시작해 노자 공자 묵자의 중국, 단테 ‘신곡’과 보카치오 ‘데카메론’의 서양, 퇴계 율곡,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등 그 어려운 사상을 삼각형 원뿔 마름모 등을 그려가면서, 그는 대부분 수학 공식으로 신기할 정도로 쉽게 설명했다.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을 간단히 요약한 물고기 도형은 지금 보아도 경이롭다. 신체특이사항
지난 15일 별세한 한태동 연세대 명예교수. 도서출판 동연 제공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칸트, 헤겔, 하르나크(독일 루터교 신학자), ‘도전과 응전’이라는 토인비 역사관 강의를 듣다가 면접후결정 , x3(X 세제곱)의 인공지능 시대가 열릴 거라고 그가 말하던 1980년대, 수많은 연세대생은 인식이 다차원으로 펼쳐지는 체험을 했다. 그의 저술 ‘사유의 흐름’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인지과학의 필독서다. 오로지 자기 전공만을 고집하는 ‘거머리의 두뇌’(니체의 말)는 그의 그림자에도 다가가지 못한다. “서론과 목차와 결론을 보고 판단하고, 쓰레기 같은 책 단수취급명사 은 읽지도 말라.” 책을 X라고 하면, 그 책을 비평하는 x²(X 제곱)의 책을 미리 읽어서 선별하라는 식이다. 가장 친한 고고학자 손보기(1922~2010) 교수를 자주 얘기하던 그는 이성의 고고학적 뿌리를 사유하며 창조하는 성찰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라는 찬송을 부를 때, 나는 더 놀고 싶다고 붙잡지 말라고, 못 잡게 발을 떤다.” 깜짝 놀랄 솔직한 얘기를 하는 자유인이 쓴 ‘성서로 본 신학’은 도그마에서 벗어나 본질로 향하는 기록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2단계로만 해석하던 ‘십계명·주기도문·예수의 40일 시험’에 ‘물질(자연)과의 관계’를 넣어 3단계 입체 삼각형으로 본 그의 해석도 잊을 수 없다.
강의 중인 한태동 교수. 도서출판 동연 제공
신학을 하던 내가 대학원 국문학과로 진학해 인사드리러 갔더니, “이놈아, 문학을 하려면 이광수보다 더 큰 문학을 해야 해”라고 하셨다. 그릇 작은 내 꼴을 이미 아시는가, 왜 이광수일까, 했는데 중국 상하이 그의 집에 오가던 김구, 윤봉길, 이광수 아저씨랑 꼬마 한태동은 밥상 대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광수가 친일하기 직전이었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을 대던 독립운동가, 해송양행 한진교의 아들로 1924년에 태어난 그는 안창호 같은 독립투사 무릎에 앉아 그분들 수염을 만지며 자랐다. 그가 다닌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은 나중에 김일성대학 초대총장이 되는 한글학자 김두봉이었으니, 그에게 보수니 진보니 이념 따위는 그저 이항대립의 한 끝이었겠다. 임정 자금 대던 독립운동가 아들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 기부하며 ?“내 건 다 독립운동하신 아버지 것” 1947년 상하이 성요한대(세인트존스대) 의대를 졸업하고, 역사학＋신학＋문학＋음성학＋르네상스 회화 등등 그 스스로 거대한 도서관인 선생의 선집을 내고 싶어, 출판사에서 일하던 내가 감히 1990년에 갓 은퇴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새벽까지 책 읽고 늦게 일어나는데, 이놈아, 오전에 전화 걸면 어떡해.” 은퇴한 그는 거의 무한대의 발음을 할 수 있는 훈민정음 3차원 음성학을 분석하느라 시간이 없단다. 뜬금없이 웃으며, 햐, 분청사기는 정말 이쁘디 않냐, 그깟 책을 뭐하러 내냐, 모자란 제자에게 갑골문자 자료를 주시며 돌려보냈다. 그때 연구로 2016년 용재 학술상을 수상한 그는 연세대출판부에서 선집 6권을 냈고, 이후 도서출판 동연이 ‘심재 한태동 전집’을 내고 있다.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인정하고, 감사하라던 그는 누구와도 격의 없이 대화했다. 우연히 신기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 1983년 어느 날 연배가 비슷한 50대의 문상희 교수와 이놈 저놈 하며 연구실 복도에서 우산으로 칼싸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린애 같았던 두분 모습이 눈물 나올 만치 그립다.
자택에서 제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한태동 교수. 도서출판 동연 제공
2015년 연세대 인근 땅 454㎡(130여평)를 기부하고, 2019년 용인세브란스병원에 1억3천여만원을 기부하면서도 “내 것은 다 독립운동하신 아버지 것이야”라고 했다. “죄 없는 소나무를 왜 잡아 흔들며 기도하냐. 소나무 뽑지 않아도 다 들어주시잖나”라며 예수와 농담할 만치 친한 그가 낸 기금 덕에, 연세대에는 신학대학원생을 위한 그윽한 도서관 ‘심재(心齋) 스터디룸’이 생겼다. 가르쳐 주신 내용의 1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저 10분의 1 부스러기라도 귀동냥한 시간이 행복할 뿐이다. 지리멸렬한 시대에도 그의 풍성한 지적 향연 덕에 수많은 청년이 기아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거대한(泰) 동녘(東)의 지성을 배웅하는 빈소에 본 회퍼 노래 ‘선한 능력’이 은은히 퍼질 때, 선생님 앞에 무릎 꿇었다. -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남겨주신 물고기 도형과 수학과 예수의 삶을 더 성찰하겠습니다. 선생님께 배워 행복했습니다. 김응교/시인·숙명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