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일 ‘2025 오늘의 우리 만화’ 다섯 작품이 발표됐다. 매해 한국만화가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는 국내 3대 만화상으로 꼽힌다. 대중적 인기만으로 줄 세우는 상은 아니다. 시대적 경향을 반영하는 작품성에 더 초점을 맞춘다. 〈두 마리를 위한 뜰〉 〈리듬 앤 베이스볼〉 〈무사만리행〉 〈믿을 수 없는 영화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 올해 수상작으로 뽑혔다. 수상작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상금 700만원을 받는다. 시상식은 11월3일 ‘만화의 날’에 열린다.


만화를 하위문화로 보는 이는 이제 소수다. 남녀노소 사이다릴게임 가 대중교통에서 웹툰을 본다. 그래픽노블도 출판계에서 마니아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영화와 OTT 드라마가 만화를 원작으로 삼는다. 그런데 다양한 경로로 한국 만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고정관념 또한 널리 퍼졌다. 대형 웹툰 플랫폼이 주류로 자리 잡자 콘텐츠의 다양성이 줄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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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오늘의 우리 만화 선정위원장인 박인하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 ⓒ시사IN 조남진



2025 오늘의 우리 만화 선정위원장을 맡은 박인하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지난 30여 년간 만화평론 릴게임바다이야기 가로 활동해온 그는 “오히려 한국이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만화가 나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 추천을 벗어나 더 다양한 곳에 눈을 돌린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만화를 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국 만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수상작의 면면과 심사평, 작가들의 생각을 들었다.


〈믿을 수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없는 영화관〉(황벼리, 한겨레출판)은 수상작 중 유일하게 웹툰이 아닌 출판 만화다. 이런 작품을 ‘그래픽노블’이라고 부른다. 일반적 만화와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소설 같은 내용을 담은 만화 형태의 작품’ 정도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껴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청년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담았다. 줄거리를 ‘요약’하기 쉽지 않은 릴게임신천지 작품이다. 대사량이 적고 인물들의 표정 변화도 미묘하다. 읽는 이를 동요시키는 극적 사건은 없고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중심인물들의 감정만을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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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영화관>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8년여간 출판 독립 만화를 그린 황벼리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현실 탈출은 불가능한 이야기이기에 당연히 그 끝은 실패일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나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과 달리 극적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 사람들의, 별것 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다뤘다고 했다. 애착이 가는 장면 역시 “별것 없는 페이지”라고 말했다. 주인공이 혼자 학교 벤치에 앉아서 꽃과 빗물 웅덩이를 바라보다가, 누군가 옆에 와서 앉는 장면이다.

아이 받치는 서로 다른 손과 앞발

종이로 된 그래픽노블 특유의 서정적이고 깊은 맛이 있다. 오늘의 우리 만화 선정위원회는 선정평에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이 “(수상작으로) 가장 먼저 결정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박인하 선정위원장은 “최종 후보들 가운데 모든 선정위원이 처음부터 이견 없이 추천한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고민을 담아냈는데, 그 방식 또한 일본이나 다른 나라와 다른 독특한 형태다”라고 덧붙였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두 편 선정됐다. 수상작 〈두 마리를 위한 뜰〉(솜마르, 네이버 웹툰)과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고먕, 네이버 웹툰) 모두 네이버 웹툰에서 주관하는 ‘지상 최대 공모전’에 입상해(각각 2022년, 2023년) 데뷔했다. 오늘의 우리 만화 선정위원회는 이들 수상작을 두고 “신인 작가의 참신함과 전혀 신인 작가 만화 같지 않은 능숙함이 조화를 이뤘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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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를 위한 뜰>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두 마리를 위한 뜰〉의 주요 인물은 모두 동물이다. 일견 형용모순 같지만 동물인 캐릭터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의미다. 집단에서 내쫓긴 산양, 동물을 죽일 수 없는 늑대가 함께 여행을 한다. ‘인간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이 겪을 법한 사건을 맞닥뜨린다.


솜마르 작가에게 아이디어가 나온 과정을 묻자 긴 답변이 돌아왔다. “동물이 나오는 영상을 보다 보면 그들의 의사소통 능력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야생 사슴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자 다음 날 그 사슴이 다른 사슴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사슴은 대체 친구들에게 뭐라고 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신기하고 궁금했다.” 관심과 호기심은 곧 상상으로 이어졌다. “동물이 그들만의 언어로 많은 것을 주고받고 있을지 모른다. 멀리서 보면 산기슭을 걷는 두 마리 동물이지만 그 사이 수많은 대화와 감정, 우리가 모르는 모험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선정위원회에 따르면 〈두 마리를 위한 뜰〉은 서사, 작화, 세계관 등 모든 면에서 선정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신인 작가로서 도전적 연출을 하는 데에 부담도 뒤따랐다고 솜마르 작가는 말했다. 특히 많은 양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들이닥치는 웹툰 특성상 더욱 그랬다. 그의 말이다. “주인공 ‘우이람’의 인간 모습과 양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연출이 새롭고 흥미롭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으나, 낯설고 몰입에 방해된다고 말하는 독자도 있었다. ‘불호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이런 연출을 하지 말았어야 하나’라고 심히 자책했다.” ‘자녀와 함께 보면서 토론한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만화로 기억된다면 작가로서 행복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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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반전이 두 번 있는 작품이다. 제목은 일상적이지만 사실 인간의 문명이 붕괴된 뒤를 다루는 SF물이다. 그럼에도 여느 ‘아포칼립스’ 작품들과 달리, ‘힐링’ 웹툰을 표방한다. 보호소에서 살던 주인공 아이가 ‘엄마’라는 개념을 뒤늦게 인지한다. 엄마를 찾아 떠나게 되고, 이 여정에 다양한 종족이 등장한다. 타인과의 애정을 쌓으며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 만화 표지에서는 서로 다른 종족들의 손(혹은 앞발)이 아이를 받치고 있다. 저마다 다른 보호자들이 아이를 돕는 모습을 상징한다. 고먕 작가는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돌봄은 오래전부터 어려운 일이었고 자연스레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책임을 나누었다. 요즘은 각자 삶이 버거운 나머지 연대가 사라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어린 존재를 보살피는 건 선행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다정함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연재 중 큰 인기를 끌었고 만점 가까운 평점을 유지했다. 다만 31부작 단편으로 끝나 아쉽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고먕 작가는 “주변에서 ‘단편으로 끝낼 거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많이 좋아해주시니 잠시 고민도 했지만, 처음 생각한 분량과 이야기로 전달하는 게 가장 깔끔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박인하 선정위원장은 두 신인 작가 작품의 공통점이기도 한 ‘참신함’을 이렇게 풀어서 설명했다. “〈두 마리를 위한 뜰〉은 주류에서 소외된 캐릭터의 서사,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새로운 종과 가족의 탄생을 그렸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퀴어한 만화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연령, 종(種)을 뛰어넘는 연대를 그린 이들 작품에 대해 “우리 시대 젊은 작가들이 세계를 상상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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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앤 베이스볼>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다른 두 수상작은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다. 〈리듬 앤 베이스볼〉(장이·황지성, 카카오 웹툰)은 야구 만화다. 팀에서 방출된 두 베테랑 선수가 다시 그라운드에서 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렸다. 선정위원회는 “꾸준히 스포츠, 그중에서도 야구 만화에 집중한 두 작가의 저작 목록”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스포츠 만화 작화와 전개 양쪽에 잔뼈가 굵은 작가들의 노하우가 엿보인다.

“‘재미있는 만화’ 그 자체로 기억되길”

두 작가 모두 야구와 인연이 깊다. 글을 담당한 장이 작가는 2007년 사회인 야구 소재 〈퍼펙트 게임〉을 시작으로, 야구 만화 여러 편을 내놓았다. 그림을 맡은 황지성 작가는 학생 때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10여 년 전 야구 웹툰 작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친분이 두터워 자연스럽게 협업하게 되었다.


황지성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에 공감하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아내가 출산하는 자리를 지킨 뒤 곧장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아빠는 워밍업이 필요 없다’는 대사에 아빠로서 공감이 되었다.” 그는 마치 지망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준비 단계에서부터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일 연습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 과정이 프로 무대에 서기 위해 의기투합하며 특훈하는 주인공들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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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만리행> ⓒ한국만화가협회 제공



〈무사만리행〉(운·배민기, 네이버 웹툰)은 2020년부터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퓨전 사극 웹툰이다. 작가들 계획상 지금까지 연재분 이상을 앞으로도 게재할 예정이다. 망국의 무사가 고대 로마제국에 노예로 팔려 검투사로 싸우는 이야기다. 무척 속도감 있고 액션 표현이 세심하다는 평을 받는다. 기획이 나온 건 2015년이다. 글 담당인 운 작가는 “자료조사차 본 책에서 ‘머리가 검고 긴 아시아인 검투사’에 대한 언급을 한두 줄 봤다. 여기서 착안했다”라고 말했다. 대사와 전개는 운 작가가, 그림과 연출은 대체로 배민기 작가가 맡는다. 연재 중인 2부는 파르티아를, 3부는 중국 한나라를 배경으로 진행한다고 운 작가는 말했다.


배민기 작가는 첫 흥행작이라 뜻깊다고 말했다. “(〈무사만리행〉 연재 전) 작품들이 하나같이 실패해서 웹툰을 그만할까 고민했다. 만화 인생 처음으로 많은 분이 봐주는 인기 작품이다. 매주 연재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대규모 전투나 거친 액션을 표현하는 데에 세로 스크롤은 장벽이다. 그래서 배 작가는 ‘줌인’을 택했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스크롤 연출 방식 웹툰은, 출판 만화에 비해 풀샷의 중요도가 낮다. 인물이 크게 들어가는 장면에서 임팩트를 주기 위해 표정 묘사에 신경 썼다.”


두 작가에게서 만화라는 분야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를 겸하는 운 작가는 “영화나 드라마 대비 만화, 특히 웹툰은 제작 비용이 적다. 위험부담이 적기에 대담한 실험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영상산업이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원인이 된다. 한편 배민기 작가는 ‘만화 자체의 재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부터 영상화 여부가 웹툰의 가치에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그 결과 대다수 작가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웹툰을 제작한다. 〈무사만리행〉은 웹툰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만화라는 게 그런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만화’ 그 자체로 기억되면 좋겠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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